살다가 느낀 점 20) 영원한 행복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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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한 교양수업에서 교수님이 학생들 한명 한명에게 돌아가면서 인생의 목표를 물어본 적이 있다. 교수님이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세요?”라고 물어보면 학생들이 대답하는 식이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은 자기가 되고 싶은 꿈이나 가지고 싶은 것들을 말했다. 내가 인생의 목표를 ‘행복’이라고 답한 이유는 사실 그럴듯하고 있어보이기 위해서였다.
살다보니 사람들은 제각기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마다 어떤 영역에서 얼마만큼의 행복을 느끼는지는 다르다. 부족함 없이 가질 것 다 가지고 있는 사람도 불행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부자는 아니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OECD에서는 정기적으로 행복지수를 조사한다. 각국의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고 사는지를 조사해서 수치화 한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 싶은 내용은 아니지만 한국은 이 조사에서 거의 매번 꼴지를 차지한다는 게 눈에 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학자들이 이런 저런 주장을 펼쳐왔다. 철학자든, 경제학자든, 사회과학자든, 인문학자든 그들의 이론과 주장은 다채롭지만 어쨌든 이들이 그렇게 말하고 쓴 이유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인간이 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여기서 우리는 실제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추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에게 행복만큼 중요한 건 없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영원한 행복은 적어도 이 세상에선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SNS에 올리는 멋지고 예쁜 사진들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에게 가짜 행복이라도 어필하고 싶어서 SNS에 함몰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멋진 여행지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다거나 이성친구와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데이트를 했다거나 열심히 저축해서 가지고 싶던 물건들을 샀을 때 실제로 그들은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문제는 세상에서 기쁨이나 행복을 가져다주는 모든 것들은 절대 다수가 일순간에 머문다는 점이다. 이게 정말 큰 문제다.
오래전 서울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흥미로운 설문조사 결과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서울대에 합격하고 나서 얼마나 오랫동안 이 사실로 인해 행복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평균적으로 서울대생들이 내놓은 답변은 ‘한달’이었다고 한다. 그 때는 지금보다 학벌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학벌이 곧 성공의 디딤돌이라는 인식이 만연했던 때라는 것을 고려하면 한달이라는 답변은 짧아도 너무 짧게 느껴진다. 그들이 모두 입 모아 거짓말을 했을리는 없을테니까 나는 이 조사결과를 신뢰한다.
서울대생 설문조사 결과는 행복이 장기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낱 예시에 불과하다. 내가 관찰하고 느낀 결과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이랬다. 짧은 기쁨은 가져다주지만 금세 목말라진다. 우승을 차지한 프로스포츠팀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얼마나 기쁠까? 해당 시즌의 최고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지나고 나면 또 내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과거의 행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내년에 또 우승을 한다고 해도 후내년 준비에 정신없이 바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과 성취들이 다 이러해서 다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해도 시들기 마련이다. 해는 중천에 뜨는 순간부터 지기 시작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 싱싱한 풀도 마른다. 젊음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진다. 인간이 이룬 모든 업적과 성취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힌다. 그 어떤 위대한 인간도 자신이 이룩한 어떤 일 때문에 영원히 행복할 수는 없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왁자지껄한 모임이나 우아한 파티가 끝나기 무섭게 공허함과 외로움은 찾아온다.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니 이미 돌아오는 길에서 행복은 벌써 사라지기 시작한다. 유토피아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영원한 기쁨과 행복도 그러하다. 리미트 n분의 일은 0이다. n값이 계속 커지면 전체값이 0으로 계속해서 수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n값이 아무리 커져도 절대 0에 도달할 수는 없다. 영원한 행복도 마찬가지다. 이건 환상과 같아서 무슨 짓을 해도 절대 가질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인간이라는 갈대의 비참함과 비애가 놓여있다. 이 상태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일까? 과연 이 상태를 전환시켜 줄 수 있는 게 있긴 있을까? 이 문제야 말로 인간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될 거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