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느낀 점 ① 친구는 없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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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통 나이가 어릴수록 친구가 많다. 유치원생, 초등생, 중고등학생은 같은 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진다. 대학에 진학하면 ‘아싸’들도 있지만 대개 같은 과, 같은 동아리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교우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러다 고학년이 될수록 인간관계의 숫자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살면서 깨달아보니 친구가 없는 건 두려운 일도 아니요, 외로운 일도 아니었다. 의미없는 모임에 나가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얘기를 듣고, 그들과 억지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맞춰주는 일은 성가신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를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초점은 자신에게로 향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자기 이야기만 하다 보니 서로 공감하고 마음이 맞는 경우는 드물다. 있다고 해도 그 순간 뿐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타인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타인을 생각해 주기 힘들다. 타인이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데 정작 그가 그렇지 않아 보일 때, 오히려 외로움은 가중된다.
어릴 때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잘 모른다. 살다 보니 대부분의 인간들은 나쁜 본성이 있더라. 거짓말을 하려 하고, 나를 이용하려고 하고, 심지어 소모품 취급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건 내 능력을 인정하고, 나의 진가를 알아봐서가 아니라 결국 자기 이익에 내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내 갈 길을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개척해야겠다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니 진국인 사람은 몇 없더라. 그렇다고 타인을 탓하거나 욕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이 명제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더이상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게 된다. 정작 나도 타인에게는 그렇게 비칠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내 이익이 가장 중요하니까.
게다가 나이가 들면 사람에 대한 선구안도 생긴다. 보자마자 걸러야 할 인간 유형이라는 게 생긴다는 뜻이다.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가치관이 나랑 너무 다른 사람, 보고 배울 게 거의 없는 사람 등 걸러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식으로 거르다 보니 두고두고 함께 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인간관계, 인간의 본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이런 깨달음을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가 뒷받침해준다. 그래서 힘이 난다. 그는 “인간은 홀로 있을 때 창의적으로 변하고 진정으로 자유롭게 된다”고 했다. 그의 저서를 보면 ‘고독’에 대한 강조 투성이다. 그의 철학에서 틀린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그가 인간의 실존, 인간관계의 본질 만큼은 정확하게 꿰뚫었다고 느꼈다.
친구가 없는 게 편하다.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 ‘진정한 친구 3명은 있어야 된다’는 옛말도 있지만 이 말도 틀린 것처럼 느껴진다. ‘친구는 하나도 없어도 된다’로 수정해야 되지 않을까? 친구의 존재에 강박을 느낀다는 건 남의 눈치를 본다는 뜻이다. 남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의견을 구한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피곤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사람은 개별성의 꽃을 피울 때에만 신이 창조한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다.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에 맘 편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게 훨씬 낫다. 자기발전도 하고, 그냥 누워서 뒹굴거리기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그렇게 해서 자기자신이 제법 그럴듯한 한송이의 꽃이 된다면 쇼펜하우어의 말대로 적절히 좋은 나비들은 자연스럽게 모여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인간관계를 가진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