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남침’ ‘北 세습’ 다 빼… 역사 교과서 새 시안, 무엇이 문제인가
- Headline
- 정치
지난 2일 교육부가 발표한 ‘중학생 역사‧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 기준 시안’을 놓고 학계, 교육·시민단체들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시안에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꿨고 ‘북한 세습’ ‘북한 도발’ ‘북한 주민 인권’ 등 북한에 부정적인 표현들도 삭제됐다.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라는 표현도 빠졌다. 이번 시안의 주요 문제점에 대해 쟁점별로 짚어봤다.
1. 자유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
자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다수가 결정하는 다수제이고, 자유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보다 개인의 ‘자유’를 더 우선하는 민주주의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건 오직 법과 원칙뿐이다. 법만 어기지 않는다면 누구나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게 자유 민주주의다.
자유 민주주의 개념은 1987년 개헌 당시 ‘인민·민중 민주주의’와 구분하고, 독재 체제를 다시는 허용하지 않기 위해 국민이 압도적 지지로 채택한 국가 정체성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에 반(反)공산주의를 더한 독일 기본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때문에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라고만 표현하게 되면 오독(誤讀)의 위험성이 발생한다. 주민을 인간 이하로 짓밟는 북한조차 자신들을 ‘민주주의’라고 칭한다. 개인의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마녀사냥, 인민재판이 횡행할 위험성이 크다.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가 실질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자유를 이념적 지향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자유를 뺀 보다 넓은 의미의 민주주의를 쓴 이유가 ‘인민민주주의’를 포용하도록 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꿔서라도 사회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자유민주주의를 표현함으로써 사회민주주의·인민민주주의와 구분해야 하며 헌법적 가치를 교과서에 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내용에서 ‘자유’를 뺐다는 건 헌법 기본정신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2. 천안함 폭침·北 세습·동북공정 등 빠져
오늘날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고 나아가 통일을 이룩하려면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것이 북한의 군사 도발(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등), 핵 문제, 인권문제 등이 기존 역사교과서에 서술되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번 시안은 북한의 “오늘날의 실상”을 알려주는 내용은 모두 빼버렸다. 대신에 학생들로 하여금 “남북 관계의 발전”, “남북 화해의 과정”에 주목하도록 한다.
또 이번 시안에서는 “3대 세습”이라는 용어를 빼버림으로써 북한이 “세습 체제”라는 딱지를 떼어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3대 세습” 대신에 “사회주의”를 넣어 북한이 마치 “사회주의” 체제인 양 포장해주었다.
박인현 교수는 “북한 체제 특성의 핵심 중 하나가 세습 체제인데,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차원에서 중요한 개념”이라며 “학생들에게 잘못된 개념이 전달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3.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폐기
현행 교과서 집필 기준은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최종 시안은 ‘남한과 북한에 각각 들어선 정부의 수립 과정과 체제적 특징을 비교한다’고 서술했다.
평가원은 “1948년 유엔 결의에서 대한민국은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단서가 붙어 있고, 남북한이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을 했기 때문에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전문가 자문 의견에 따랐다”고 밝혔다.
그러나 명지대 강규형 교수는 “1991년 유엔 가입과 별도로 1948년 당시 국제사회의 공인하에 세운 합법 정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봐야 한다”면서 “유엔 결의 앞·뒷부분을 교묘하게 연결하는 오역(誤譯)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조선일보 참고)
4. 1948년 ‘국가 수립’ 아닌 ‘정부 수립’
남북한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다는 주장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수립을 부정하고, 이를 ‘정부’ 수립으로 격하시키는 주장이다. 즉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나라’이기에 결코 ‘나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역사인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또한 이 시안은 남북한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남한과 북한을 대등하게 취급하고 있다.
해방 직후의 통일 정부 수립 노력이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남북한에 각각 정부가 들어서는 ‘분단 체제’가 형성되고 말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분단을 극복해서 우리민족이 하나의 통일국가를 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분단체제론’, ‘통일지향 민족주의 사학’ 등으로 불리는 좌파의 한국현대사 인식인데, 이번 ‘역사교과서 시안’은 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제 6차 교과서 국회포럼 정경희 교수 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