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폭동을 통해 본 민족 폭동의 무서운 점
Posted by 최학빈 기자([email protected]) on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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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11일 저녁, 미국 Charlottesville시에 근 10년 사이 가장 큰 백인지상주의 폭동을 일으켰다. 폭동은 3명 사망, 35명 부상의 결과로 끝을 맺었다.
25년 전 로스엔젤레스에는 동일한 민족문제로 폭동이 일어났다.
폭동은 1992년 4월 29일부터 4일간 지속되었는데, 이 기간동안 총 사망자는 53명, 1만명이 체포 당했다. 재산 손실은 8~10억 달러로 미국 1960년 이후로 최대 엄중한 폭동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의 도화선은 1991년 3월 3일 로스엔젤레스 길거리에서 백인 경찰 4명이 흑인청년을 구타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한 시민에 의해 동영상으로 촬영되었고 텔레비전을 통해 전 미국에 방송되었다. 1년후 1992년 4월 29일, 백인이 대다수인 판사팀은 ‘피고 무죄’로 판결을 내렸다.
1992년 4월 29일 흑인들은 백인들을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했다.
폭동은 로스엔젤레스의 중남부지역이 중심지였다. 폭동이 일어난 시점 경찰은 이미 철퇴한 상태였다.
당시 한 한국 점주는 4명의 폭동범을 사살했다고 전해왔다.
사건 후 4명의 경찰은 연방법원에 의해 ‘민권 침해’로 재판결 났다.
구타당했던 남성도 380만 달러의 배상금을 받았고 이 결과는 항의자들의 정서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거금을 받은 남성은 마약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