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느낀 점 ⑮ 매너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 속담이 있다. 살다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분실로 재발급 신청한 카드가 집으로 배송왔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당사자만 싸인하고 받을 수 있다는 내규가 있는 모양이다. 하필 집에 없어서 카드수령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배송기사의 연락을 받고 최대한 사정을 설명하고, 예외적으로 대리수령이 가능한지를 물었고, 승낙받았다. 나 대신 카드를 수령 받은 가족 얘기를 들어보니 나의 전화 매너가 워낙 친절해서 대리수령을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때 생각했다. ‘매너는 예외를 가져다주는구나’

시골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주유소 사장이 내 차에 주유를 하는 사이 건너편 한적한 곳으로 가서 빠르게 흡연을 하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주유소 사장이 “담배 피우는 매너가 좋구만유”라고 내게 한마디를 건넸다.

나는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매너를 중시한다. 평등한 인간으로서 각자가 누릴 수 있는 인간됨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존엄성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당연히 매너를 지킬 뿐인데 이런 태도가 칭찬 받는 세상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강서구 pc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용의자는 살해 동기를 묻는 질문에 “pc방 알바생이 나를 무시해서”라고 답했다. 무시한다고 해서 사람을 죽인 행위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다만 이 사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상대가 누구든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툴 때 다투고, 싸울 때 싸우더라도 상대의 가장 중요한 자존감과 자존심을 긁어서는 화를 면하기 어렵다. 지금 내가 대면하고 있는 상대가 엄청난 공격성을 가진 인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매사에 매너를 갖추어야 한다.

말과 행동의 매너를 지키지 않아서 크고 작은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는 일상에서 매우 흔하다. 다짜고짜 따지거나 지적을 해버리면 잘못이나 실수를 저지른 상대방은 할 예정이었던 사과도 잘 하지 않게 된다.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방어적으로 나오게 되고, 다툼은 커지게 된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감정의 데미지가 살인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행동의 수정을 요할 때는 “실례지만”, “죄송하지만”을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상대를 최소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매너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이 특권을 잘 활용해 화를 면하고 이득을 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