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느낀 점 ④ 돈을 퍼부어도 출산율은 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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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8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세종(1.12명)을 제외하면 전국 주요 도시 대부분의 합계 출산율은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0.59명)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적으로 출산율이 1.3명 밑으로 떨어지면 초저출산 현상이라고 한다. 한국의 출산율은 이보다 무려 0.5명 이상 더 낮으니 국가소멸 위기설이 나도는 게 이상하지 않다.
이에 서울시는 27일 ‘엄마아빠 행복 프로젝트 2.0’을 발표하며 바닥 친 출산율을 반등시키기 위해 2조원 이상의 금액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저출산이 본격적인 국가 이슈로 떠오른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역대 모든 정부는 줄곧 돈을 투입해 저출산을 막고자 해왔다. 하지만 돈낭비만 했을 뿐 출산율은 오히려 점점 떨어지기만 했다. 그동안 풀었던 돈을 차라리 서울시의 2030 미혼 남녀들에게 1억씩 지원해줬더라면 지금보다는 출산율이 높았을 거라는 우스갯소리 가설이 있을 정도다.
결혼 및 출산 육아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느낀 점은 정부나 지자체가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출산율은 유의미하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산하는 가정에 수십만원~수백만원 지원해준들 결국 일회성 도움으로 끝나고 만다.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는 결혼적령기의 남녀들 중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하는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평균적으로 1.5명 정도의 자녀를 낳는다고 한다. 이 수치는 우선 결혼하는 남녀가 많아지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는 오를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더 이상 결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과거에는 결혼한 남녀는 상대에게 선택 받았다는 성공자 이미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고도의 성장기 때는 남녀 모두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기르는 게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당연시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인터넷에는 결혼 후 후회한다는 내용의 글이 하루에도 여러 개씩 꾸준히 올라온다. 결혼 안 하고 혼자서 사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결혼 해서 별로 얻을 게 없다는 주장이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2) 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다. MZ 세대는 기성세대와 여러가지 면에서 큰 차이점을 보인다. 그 중에 하나가 ‘마음에 안 들면 곧장 손절치거나 그만둔다는 것이다’ 사람도 쉽게 만났다가 쉽게 헤어지고, 직장 생활도 쿨하게 관둔다. 이런 성향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도덕적 평가를 내리긴 힘들다. 어쨌거나 오랜 세월을 배우자와 함께 하면서 굳이 희생하고, 책임지고, 서로에게 맞춰나가기가 싫은 거다. 자유연애는 괜찮지만 결혼은 부담스럽다. 결혼 대신 평생 이 사람 저 사람 바꿔 가며 자유롭게 연애하는 게 더 낫다는 젊은이들도 있다.
3) 사람들이 갈수록 눈이 높아진다. 결혼 시장에서 남녀는 상품이다. 상품성이 있는 상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듯이 사람도 상품성이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다. 결혼시장에서의 상품성을 가장 크게 좌지우지 하는 것은 직업이나 학벌, 소득수준이 아니다. 이런 요인들보다는 오히려 부모의 재력이 자식들의 상품성을 가장 크게 결정짓는다고 느꼈다. 나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친구가 부모의 재력빨로, 혹은 상대 부모의 재력빨로 겉보기에 부러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왠지 나도 좀 더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야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남의 눈치를 의식하고, 최소한 그들과 비슷해지거나 그들보다 우월해야 된다는 한국인 특유의 의식구조가 더해져 상대를 보는 눈을 도저히 낮출 수가 없다. 성에 안 차는 사람과 결혼해서 후회할 바에야 결혼을 안 하거나 미루는 게 좋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4) 혼자 사는 것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주변의 문화. MBC ‘나혼자산다’는 독신 남녀와 1인 가정이 늘어나는 세태를 반영해 혼자 사는 유명인들의 일상을 예능화한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이 8~10프로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렇게 혼자 사는 것을 낭만적이고, 재미있게 묘사하는 일상의 문화들이 독신주의를 더 부추긴다고 본다. 최근에 온라인 각종커뮤니티, 대학생 어플 ‘에브리타임’ 등에서는 ‘퐁퐁남’이라는 신조어가 많은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었다. 과거 연애 경험이 여러번 있는 여성과 결혼한 남성을 해당 여성을 설거지한 남성에 빗대어 부르는 표현이다. 이른 바 설거지론이 워낙 가파르게 퍼져나가자 자신은 호구남이 되고 싶지 않다는 남성들의 의지에 영향을 어느 정도 끼쳤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런 예시는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결혼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주변의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