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느낀 점 37)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은 학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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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입시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은 고질적으로 오래된 문제다. 잊을만 하면 막중한 사교육비 이슈가 도마에 오른다.
그러면서 비싼 사교육비의 원흉으로 빠짐없이 지적되는 건 각종 입시 학원, 과외 등 사교육 기관 및 종사자다. “사교육을 법적으로 없애버리면 사교육비는 문제는 해결된다”고 단순하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 공교육만으로는 도무지 고득점을 기대할 수 없는 현행 수능 문제의 난이도(특히 킬러 문항)도 사교육비 지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느낀 점은 좀 다르다. 사교육비 지출이 막대한 이유는 오히려 부실하기 짝이 없는 공교육 때문이다. 한국의 공교육은 완전히 무너졌다. 학원강사를 하면서 이 문제를 피부로 직접 느낀다. 학교에서 나눠준 학습지를 한 장도 안 푼 학생들이 있는데도 학교 교사들이 이를 확인조차 안 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 과목에 대한 지식 수준도 떨어져서 학생들이 좀 어려운 질문을 하면 쩔쩔매는 교사들도 있다. 그렇다고 수능을 대비할 수 있을 만한 깊은 지식을 가르치지도 못한다. 학교 교육에서 기대할 게 없으니까 사교육 시장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거다.
학교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대학에 지원할 때 수시 전형에서 중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중학교 내신은 좀 미끄러져도 입시에 큰 지장은 없다. 고등학교 내신은 다르다. 잘 하다가 조금만 미끄러져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데 비상이 걸린다. 고등학생들이 내신성적에 사활을 걸다 보니 내신을 출제하는 학교 교사들 입장에서는 문제의 난이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쉽게 출제하면 변별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 수업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내용, 혹은 자기가 설명하지 않았던 내용을 변별력을 위해 내신시험에서 출제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학교 교사가 직접 가르치지도 않았던 내용을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해오라고 시킨 다음 내신 시험 문제에 출제하는 경우도 많다. 과연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학생들은 학교에서 알려준 내용을 공부하기도 벅차다. 그런데 변별력을 위해 시험범위를 광범위하게 하거나 알려주지도 않은 내용을 출제한다는 건 상식을 벗어났다. 혼자서는 내신 대비가 안 되니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공교육이 사교육 시장의 성행을 부추기는 셈이다.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한 내신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신 문제의 질이 그닥 좋지도 않다. 영어의 경우 그 광범위한 내용을 거의 완전히 암기하지 않으면 100점이 나올 수 없도록 문제를 출제한다. 아마 교사 본인도 다른 교사가 그런 식으로 문제를 출제하면 100점을 받을 수 없을 거다. 가끔씩 보면 참 기가 차서 벙 찌게 되는 문제들도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문제를 출제한 걸까’ 싶은 문제들도 있다.
물론, 고등학교 내신이 워낙 중요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줄세우기를 해야 하는 공교육 교사들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본인이 가르치지도 않은 내용을 시험범위에 포함시킨다거나 어거지로 출제한 문항들에 대해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싶은가? 정말 사교육비가 한국사회의 큰 병폐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정답은 간단하다. 수시의 비중을 대폭 줄이거나 내신제도를 폐지하면 된다. 공교육 교사들이 ‘내신 출제자’라는 권력을 쥐고 있는 한 사교육 시장은 축소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