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마마보이’가 늘어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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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줄곧 자란 귀중한 독자이다. 서울내 명문 법대를 졸업하고, 좋은 기업에 취직하여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을 떠나 타지에 가서 생활을 하고 있다. A씨의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매일 밤만 되면 엄마는 A씨에게 전화를 건다.
“OO아 저녁은 먹었니? 건강이 우선이다. 밥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 A씨도 엄마의 이런 전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네 엄마”라고 답한다.
장거리 전화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꼬박꼬박 몸소 부산으로 내려간다. 아들이 묵고 있는 집에서 취사, 세탁, 청소, 쇼핑 등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 마음 같아서는 부산에서 계속 아들과 지내고 싶지만 서울에는 남편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올라간다. 그렇게 서울로 되돌아간 엄마는 기쁨 없이 살다가 아들에게 내려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이것은 비단 A씨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마마보이’ 남성들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좋은 대학을 졸업하거나 교육수준이 높은 남성들 중에 이런 사람이 많다. A씨는 앞으로 마음고생이 클 것이다. A씨가 나이가 차면 엄마는 그의 결혼상대를 직접 찾아나설 것이다.
A씨의 결혼 상대는 쉽게 나타날 지 몰라도 결혼 후가 더 큰일이다. A씨와 엄마는 이미 정서적으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사이에 젊은 여성이 등장하면 한 남성의 애정을 두 여성이 쟁탈하는 꼴이 된다. 그 사이에서 A씨의 마음 고생은 엄청날 것이다.
이런 남성과 결혼한 여성도 역시 불행해진다. 결혼 적령기의 여성은 남성의 학력 및 직업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머니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되어 있는가의 여부다.
A씨와 같은 마마보이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강한 모자일체감 때문이다. 모자일체감이란 ‘아들은 나의 기쁨, 나의 보람이며 아들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요 아들의 슬픔이 곧 나의 슬픔’이라고 믿는 어머니의 심리이다.
아이와 어머니의 모자일체감은 아이의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아이가 초등학생 4학년 이후에도 계속 그렇다면 부모로부터의 아이의 독립이 지연된다. 아이는 커 가면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정신적으로 멀어져야 한다. 즉 하루가 다르게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범위가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이면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있어야 정상이다.
부모는 자기 말을 무조건 고분고분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의 생각대로 자라주지 않는다. 이런 양육 태도는 아이의 자주정 발달에 커다란 장애 역할을 한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려 부모가 봐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인간이 돼 버리고 만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부모 자신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부모 자신이 아이에게서 독립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모자일체감을 가진다면 어머니는 아이로부터 독립할 수 없고, 아이도 어머니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지속적인 모자일체감은 어머니 본인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남자는 성인이 되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교제하는 여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때로는 같은 사안에 대한 어머니와 여자친구의 의견이 다를 때도 있다. 이 때 남자가 여자친구의 의견을 따르면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버림받았다는 기분이 든다. 노후가 비참해질 수도 있다.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된 이상 아이를 잘 기를 책임이 있다. 자주성과 성실성을 갖춘 성인으로 키워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다. 이것이 부모의 도리이지만 자식이 일정한 연령에 이르면 부모로서의 의무는 끝난다. 자식을 자기의 보람이나 생명이라고 생각해서는 모두가 불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