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심리학] ‘집단사고’의 위험성에 대해서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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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속세와 인연을 끊으며 두문불출하는 삶을 살지 않는 이상, 우리 모두는 최소한 한 두개의 집단에 소속되어 생활하고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을 정의내리자면 ‘서로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주며 일정한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2명 이상의 사람들의 집합’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따라서 우연히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집단이라 보기는 어렵다. 지하철의 승객, 백화점의 고객, 야구장의 관중들은 서로 상호작용하거나 사회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집단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서로 같은 목표를 갖고 있으며, 구성원들의 행동을 조정하는 규범을 지니고, 구성원들은 각각의 지위와 역할을 갖고, 서로 ‘우리’라고 지각하는 가운데 소속감을 가질 때 집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의 신도들, 갱조직, 동아리의 회원들은 집단의 정의에 꼭 들어맞는 요소들을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집단은 원자화된 한 개인에게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준다. 특히 서로 공유하는 목표를 갖고 스스로 만든 규범 속에서 단합된 행동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어가려고 할 때 집단은 개개인이 할 수 없는 커다란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집단은 때때로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부정적이거나 심지어 재앙적인 결론에 도달하곤 하는데 이러한 집단의 부정적인 심리학적 속성 가운데 하나가 ‘집단사고'(group think)이다.
집단사고란 집단성원들 간에 만장일치의 분위기가 팽배해 그러한 동조의 압력 때문에 다른 대안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종의 ‘잘못된 의사결정’이다. 합리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왜곡된 사고의 양식인 셈이다. 심리학자 Janis(1972)는 ‘충분한 논의 없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는 현상’을 집단사고로 정의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집단사고 현상을 많이 목도하고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대학 수업에서 조발표를 준비할 때 나머지 조원들은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만 생각이 다른 경우 만장일치의 압력 때문에 쉽게 의견을 내기가 힘들어진다. 사실은 소수의견이 더 바람직하고 좋을 수도 있는데 집단의 압력 때문에 묻히고 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집단사고 때문에 발생한 대형사고가 여럿 있었다.
첫 째, 케네디 정부의 피그만 침공 계획이다. 1961년 케니디 정부는 미국을 괴롭히는 쿠바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 소위 피그만 침공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작전은 쿠바를 침공할 경우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점들을 고려하지 못하고 집단회의를 통해 침공을 결정했고, 결국 참패로 끝났다. 미국의 피그만 침공 실패는 5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미국인에게 뼈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일대 사건이다.
둘 째, 2차 대전 때의 진주만 습격이다. 20명의 대령, 중장, 기타 주요 해군 장교들을 포함한 킴멜 제독의 보좌관들로 이루어진 집단은 집단회의를 통해 1941년 진주만을 훈련 기지로서만 두어 무방비 상태가 되도록 방치했다. 결국 이 잘못된 집단사고는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도록 허용한 셈이 되어버렸고, 미국은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다.
셋 째, 워터게이트 사건 때의 닉슨 행정부의 결정이다. 당시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참모진들로서 존 딘, 존 에를리히만, 찰스 콜슨, H.R. 홀드먼 등으로 구성된 집단은 집단사고 끝에 최악의 결정을 내리고 만다. 1971년부터 1972년 사이에 워터게이트 민주당 선거 대책 본부에 대한 침입 및 도청 증거를 인멸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발각되어 미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력을 가졌던 닉슨대통령은 최초로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비극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집단사고는 어떤 경우에 잘 일어날까?
첫째는 집단응집력이 높을 때, 둘째는 외부로부터의 의견이나 비판이 배제되었을 때, 셋째는 권위적 리더가 존재하는 경우, 넷째는 대안을 제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체계적 절차가 없을 때, 다섯째는 집단이 높은 스트레스에 처한 상황일 때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권위가 지나치게 강할 경우, 대통령의 지시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구성원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 눈밖에 날까봐 염려하여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하게 되고 결국 충분한 비판과 토론이 배제된 채 그릇된 결정에 따르고 마는 것이다. 더욱이 그 집단이 내부적으로 상당히 응집력이 높고, 외부의 언론이나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도 차단한 채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해 있다면 집단사고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집단사고가 위험한 이유는 ‘착각’ 때문이다. 일단 집단사고를 하게 되면 외집단에 대해 상당히 편파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케니디 정부가 피그만 침공을 결정할 때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허약하고 사악한 공산주의자이며 쿠바가 공격을 받더라도 알아차리지 못할 멍청한 사람”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하물며 나이나 역할, 성별에 따라 아직도 일방향의 수직적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강하게 작동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집단사고의 위험성이 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주의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집단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조급한 만장일치 추구를 억제하고, 집단 성원들의 오류를 수정하고, 외부 전문가로부터의 비판의 통로를 열어 놓아야 한다. 또 의사결정 시 그 결과로 초래될 위험이나 다른 대안들을 충분히 검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니 좋은 집단 분위기를 그대로 즐기자”는 안일한 생각을 경계해야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