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박열”속 가네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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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이 10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썼다는 작품 “박열”은 순제작비 26억원의 소규모 영화다. 19일에 발표한 누적관객수는 228만 9124명이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박열’은 1923년 도쿄, 6천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 분)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영화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에 등장하는 사건들, 대지진, 6000명 학살, 재판 기록,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 문제제기, 괴사진, 그 사진이 일본 전역에 미친 여파 등은 사실을 벗어난 것이 전혀 없다.” 고 했다.
-독립운동가 박열
박열(朴烈, 1902년 2월 3일 ~ 1974년 1월 17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박준식(朴準植)이다.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나 경성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했다. 경성고보 재학 중에 3·1 운동 만세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하고, 1919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정칙영어학교에서 수학하였다실제 박열은 최초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도회”를 조직했으며 1923년 일본 왕자 히토히토를 암살하려 한 이른바 대역사건'(大逆事件)으로 검거되어 해방 때까지 징역을 살았다. 해방 후에는 일본으로 재일조선인거류민단을 만들고 단장을 역임하면서 남한단독정부수립 노선을 지지했다.
우리 나라의 독립 운동사를 훑어보면 부부가 함께 투쟁한 예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좀 특이하다. 물론 여자가 독립 운동을 한 예는 많이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그 여자는 미혼이었거나, 아니면 남편과 사별(死別)한 여자들이었다.
그런데 여기 부부가 함께 독립 운동을 한 특이한 예가 있다. 바로 박열이 그런 경우에 속하는데, 박열의 아내는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더욱이 특이하다.
두 사람은 복역 중 결혼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하여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었으나 가네코는 형무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박열은 1945년 8·15광복으로 22년 2개월 만에 석방되었다.